것이며, 더구나 임진왜란․병자호란의 두 난리로 인해서 그나마 전해지던 책도 없어져서 현재 초간본은 권6․권9․권13․권19․권23․권24가 각 1책씩 전할 뿐이다. 복각된 중간본도 권3․권11의 2책만 전한다. 권3은 16세기 중엽의 중간목판본으로 천병식(千柄植)이 소장하고 있다.
원본으로 현재 간송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예의(例義)’, ‘해례(解例)’, ‘정인지 서 (鄭鱗趾 序)’의 3부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실록본 : 세종실록(28년 9월조)에 ‘예의’외 ‘정인지 서’ 수록.
(2) 언해본
-희방사본(喜方寺本) : 일명 월인석보본(月印釋譜本). 선조 5년(1572년) 간행의 월
더불어 역시 {-오/우-}의 한 통사적 특징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2.3 약속법과 {-오/우-}
약속법의 경우는 15세기 문헌에서는 그 용례를 찾을 수가 없고, 비록 16세기 문헌에 나타나는 것이기는 하나, 약속법을 {-오/우-} 문제와 관련시켜 이들 양자 간의 관련성에 대하여 살펴보려는 것이다.
연구결과로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연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향가로 미루어보아 고려시대까지는 각 왕조의 지배층도 우리말 기조의 말은 쓴 것은 틀림없으나 적어도 어휘만은 서민과 달리 그들 지배층의 독특한 말을 많이 섞어 썼다. 단군조선과 전기신라(박씨)/동예의 지배층
이 논문은 고대국어의 한 방언인 고구려말의 차자 표기 자료를 분석한 논문이다. 이는 곧 고구려시대에 고구려지역에서 쓰인 말에 대한 연구라는 점에서 하나의 공시언어학이다. 즉, 고대국어를 단일어에 뿌리를 둔 하나의 큰 공시태로 설정하고, 이 가운데 고구려 지역에서 쓰인 말에 관련된 자료를
월인석보』는 조선조의 세조가 부왕인 세종과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 그리고 요절한 세자 덕종(德宗)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간행한 것이다. 『월인석보』는 『月印千江之曲』과 『釋譜詳節』을 합해서 편찬한 책으로, 정음으로 이루어진 산문 문학의 효시이다. 이는 세종과 세조 양대에 걸쳐 이룩
15,16세기의 정음문헌은 거의가 중앙의 간행물들이며 특히 초기 문헌들은 언문청(정음청)이나 간경도감과 같은 궁중기관에서 편찬한 것들로 현저한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 문헌은 전반적으로 당시의 중앙어, 그것도 상류계급의 언어를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들 문헌은 대부분 언해이므
국문학적 의의는 우리 나라 최초의 번역 시집인 점과 한시 및 국문학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점(한시의 모범으로 삼아 연구할 가치를 지닌 점)이며, 국어학적 의의는 초간본과 중간본이 약 150년의 차이가 있어 국어의 변화(음운 및 어휘 변천)를 살피는 자료가 된다는 것이다.두시언해의 원제는 분류
연구(의미론)는 19세기 근대 언어학 시대 이후의 일이다.1825년경에 와서 독일의 라이지히에 의해 학문적인 체계를 갖추게 된다.
라이지히 : 베르린 대학, 할레 대학의 독일 고전학자. 그의 저술은 자택에서 개인 강의를 받은 수강생들의 필기가 정리되어 그가 작고한 10년 후에 간행되었다. 그의 私講義
연구에서는 이같이 악장의 범주를 설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에서 논의한 것을 가지고 악장의 개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악장은 조선조 초기인 15세기에 주로 지어진 궁중의 음악으로서 왕실을 찬양하거나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이 중심이 되어서 이루어진 노래를 가